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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연암대학교 도시민수료 선배님의 기사(손병용님)입니다.

글번호 : 158034 작성일 : 16.04.07 PM 02:05:51 작성자 : 안은정 조회 : 510
 
▲ 내포마을을 찾은 아이들이 논에서 연을 날리고 있다.

들판이 전부였던 마을…초·중학교 체험객으로 활기
마을공동체의 저력…활기찬 농촌 마을로 부상

볼거리라고는 고작 긴 들판 뿐이었던 마을이 활기찬 농촌체험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귀농 9년차를 맞은 손병용 이장이 그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주시 신니면에 위치한 ‘내포긴들체험마을(이하 내포마을)’은 2012년에는 들녘에 풀만 무성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다른 시골마을처럼 주변에 문화재가 있거나 동굴, 계곡 등 천혜 관광자원을 갖춘 마을이 아니다. 단지 고향을 떠난 자식들이 가끔 들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2012년 이후 3년 새 내포마을을 찾는 체험객은 약 1만여 명에 이르렀다. 마을에 꽃길을 조성하고 벽화를 그리는 등 손병용 이장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화합해 마을을 변화시켰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농촌마을로의 변화는 지자체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척박한 시골 마을의 ‘르네상스’를 일궈낸 손 이장을 지난 설 명절에 만났다.

   
▲ 충주 내포긴들체험마을 손병용 이장

# 마을 잔 심부름은 전부 ‘내 몫’
“잠시만요. 윗집 농장에 개밥을 줘야 해서요.”
인터뷰 도중 시계를 보더니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린 손 이장.
손 이장은 5분 만에 돌아와 숨을 몰아쉬었다. 설 명절을 쇠러간 마을 주민이 대신 개 사료를 줘달라는 부탁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다.
“시골마을 이장이 뭐 딴 게 있나요. 마을 주민들 주문사항 하나하나를 경청해 잠시 신경만 쓰면 돼죠.”

이렇듯 너그러운 시골 민심, 아니 ‘촌심’을 보여주는 손 이장도 귀농자이자, 귀향자이다.
그는 2008년 6월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곳에 오기 전 그는 천안 연암대학에서 귀농교육을 4개월 동안 이수했다. 같이 학습한 5명의 학우들과 자신의 고향에 내려와 콩도 심고 단호박 농사도 지었다. 그러나 겨울철이 되자 막상 할 일이 없던 손 이장은 서울 집에 올라가 부인일을 도왔다. 당시 손 이장의 아내는 수공예로 귀고리, 팔찌, 열쇠고리 등 작은 액세서리를 제조해 판매했다. 중국으로 수출도 하고 외국관광객이 많이 찾는 남대문에 작은 판매점도 운영했다. 2008년 아내를 도우며 조용한 겨울을 보내던 손 이장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농업후계자 신청하셨죠? 선정됐네요.” 짧은 통화였지만 생각은 많았다. 귀농 교육을 받으며 꿈꿨던 사업을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5000만원 융자금으로 4000평에 사과 과수원을 조성했다. 물론 고향에 땅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0년 3월 첫 식재를 했다. 사과 농사만 지으려니 다소 무료했던 손 이장은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센터, 원예협동조합 등을 찾아 사과농사 기술도 배우고 최근 돌아가는 농촌의 흐름을 살폈다.
그는 생각했다. “체험마을 좋네. 우리도 공예품 체험을 한 번 해봐?”

# 오븐점토공예, 마을의 활력소로

   
▲ 내포긴들마을을 있게 한 농산물 오븐점토공예품

2011년 손 이장은 아내가 제작한 사과, 밤, 옥수수 등의 농산물 액세서리를 (사)충주시농촌문화협회에 가지고 갔다. 귀고리, 핸드폰 고리 등 흔한 액세서리였지만 농산물이라는 점이 생소했던 농촌문화협회 직원은 선뜻 그해 11월 충주시에서 주관하는 ‘밤 축제’에 공예품 체험 부스를 내주었다. 이후 수안보 서울시공무원연수원에서도 공예품 체험 학습을 진행했고, 무술 축제, 복숭아 축제 등 충주에서 진행하는 모든 축제에 공예품 체험에 참여했다. 손 이장의 공예품 출전에는 수익이 적었지만 마을 주민들이 같이했다. 그리고 2011년 말. 내포긴들마을의 변화가 예고됐다. 바로 그가 마을 대동계에서 이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2012년 본격적으로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주민센터, 농업기술센터 등에 들려 마을에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했다. 그해 농촌마을 일자리 사업에 ‘오븐점포공예품’을 신청해 마을주민 일거리를 만들었다. 2012년 말에는 마을회관 리모델링 사업비 2000만원으로 지붕과 바닥 공사,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그리고 40명에 불과했지만 처음으로 마을로 체험객을 유치했다. 물론 테이블와 난방기는 대여했다. 하지만 첫 체험에 마을 주민과 손 이장은 가슴이 콩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회했다.

# 마을 사업에 관심...지지율도 높아져
손 이장은 아직 할 일이 많지만 여기까지의 성과에 대해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했다. 마을 주민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된 것이다. 이에 손 이장은 마을 주민들과 항상 정보를 공유하고 대소사를 상의한다. 이는 이 마을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농촌건강장수마을로 선정돼 마을 회관에 주방시설을 설치했고 꽃길, 벽화 등을 조성했다. 2013년 녹색농촌체험마을 선정으로 캠핑장과 하우스 체험장, 민물고기잡기 체험장, 수영장 등을 조성했다. 해가 갈수록 마을 주민들의 회의 참석률도 높아졌고 지지율도 올랐다. 현재 이 마을에는 87가구 1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70% 이상이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 회관의 식당 운영과 두부체험 행사는 별도로 마을 주민들이 하고 있다. 매출액 중 10%는 마을 발전기금으로 적립하고 나머지는 본인 수익으로 돌아간다.

또 마을 회관 한편에는 농특산물 판매장을 만들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물론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특히 주민들이 옥수수 농사를 지어 팝콘만들기 체험행사 재료로 쓰고 있다. 50여 명이 참여하는 옥수수 농사에 70세 고령의 참여 비율이 80%에 달한다. 이들은 단지 마을 일에 보탬이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을 얻는다. 큰 수익은 나지 않지만 겨울철 마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식사하고 가끔 여행도 즐길 수 있는 돈이다.
마을 주민들은 말한다. “젊은 놈이 열심히 하니 우리도 좋구만…”

# 신바람 난 마을 주민...  지자체 지원도 큰 힘
요즘 읍내에 나가면 내포리 마을 주민들은 어깨가 들썩거린다. 주변마을 주민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내포리 노인회 이름으로 주변 마을 26개소 경로당에 명절이면 쌀, 사과 등을 보내주고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듣는다.
그리고 손주, 손녀들이 찾아오면 용돈이라도 조금 줄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한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화합으로 이어져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는 마을 회의에서 지지율이 90% 이상 올랐다.

내년에는 내포마을을 비롯해 주변 원평마을, 선당마을 등 3개 마을에 대한 ‘긴들권역 창조마을만들기’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내포마을을 떠나 주변마을까지 농촌체험 등 활기찬 농촌마을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손 이장은 “귀농·귀촌자들은 기존 마을 주민보다 젊다 보니 정보력이 뛰어나다”며 “마을 주민과 합심해 객관적으로 마을을 평가하고 발전해 나갈 방안을 모색하는데 큰 보탬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시골 마을도 변화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마을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며 정부와 지자체 지원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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